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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기타리스트가 매일 같은 마디에서 틀린다

3화

스물일곱 번 틀린 애라고 놀려도 좋다. 그날의 내 연기는 한 번에 갔다.

"네. 처음 뵙겠습니다. 옆집에 사는 정하준입니다."

목소리 톤, 고개 각도, 약간 어색한 미소까지. 남궁 감독이 봤으면 안경을 안 닦았을 거다. 도건우의 눈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받아 주겠다는 뜻 같았다.

"도건우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누구한테요?"

"여사님이요."

여사님은 부엌에서 "내가 언제!" 하고 소리쳤다.

"이거 좀 받아 주시겠어요."

그가 헌 형광등을 내밀었다. 길고 가벼운 유리관이 둘 사이로 넘어왔다. 받는 순간 손가락 끝이 살짝 스쳤다. 그 손을 그때 처음 제대로 봤다. 크고 마디가 굵었고, 왼손 손끝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새끼손가락이 엄청나게 길었다.

손가락이 안 닿는다고?

저 손으로? 저 손이면 줄 건너 옆 동까지 닿겠다.

나는 유리관을 두 손으로 꼭 쥐었다. 건우 씨는 새 형광등을 끼우고 스위치를 눌렀다. 거실이 환해졌다. 환해지니까 그 사람 눈썹에 앉은 먼지까지 보였다. 나는 괜히 달력을 봤다.

"됐다, 됐어. 둘 다 앉아."

거실 바닥에 상이 펴졌다. 김치전이 산더미로 올라왔다.

옆집 기타리스트가 매일 같은 마디에서 틀린다 3화 사진 2

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으니 도망갈 데가 없었다.

"그래, 건우 총각은 아직도 그 기타 치나?"

"네, 칩니다."

"잘 쳐?"

"아직 멀었어요." 그가 전을 찢으며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맨날 틀려요."

전이 목에 걸릴 뻔했다.

"그러게, 밤마다 틀리대. 나는 귀가 어두워서 다행이지. 근데 G 코드가 뭐여?"

나는 물을 찾았다. 물컵이 먼저 내 앞으로 밀려왔다. 건우 씨였다.

"제가 자꾸 틀리는 데가 있는데요, 누가 그걸 가르쳐 줬어요."

"누가?"

"옆집 분이요. 쪽지로요."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전을 뒤집었다. "되게 친절하세요. 얼굴은 아직 못 뵀는데."

"그렇군요." 내가 말했다. 목소리가 놀랍도록 평온했다. "좋은 분이네요. 근데 그분 말씀이, 그 정도 틀리면 새끼손가락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고 하던데요."

"그래요?"

"네. 사람 문제일 수도 있다고."

건우 씨가 고개를 숙였다. 어깨가 또 조금씩 들썩였다. 나는 김치전을 아주 우아하게 먹었다.

"탤런트 총각은 왜 귀가 빨개?"

"전이 뜨거워서요."

여사님은 우리 둘을 번갈아 보더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벽에 걸린 사진 쪽으로 턱짓을 했다. 양복 입은 말라깽이 남자가 잔뜩 얼어서 서 있는 흑백 사진이었다.

"우리 영감이 저랬어. 말 한마디를 못 해서, 우리 집 앞 연탄재를 3년을 치워 놨어. 내가 시집간다고 소문이 나니까 그제야 와서 하는 말이, 연탄 더 필요하면 말하래."

"그래서요?"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저기 걸려 있잖아." 여사님이 전을 내 접시로 옮겼다. "사람이 할 말을 못 하면 별짓을 다 해. 먹어."

건우 씨는 젓가락을 든 채 사진을 보고 있었다. 그때만은 웃고 있지 않았다.

옆집 기타리스트가 매일 같은 마디에서 틀린다 3화 사진 3

여사님은 남은 전을 접시 두 개에 나눠 담아 우리 손에 하나씩 쥐여 주고 문을 닫았다.

복도에 둘만 남았다. 일요일 오후라 복도 끝 창으로 해가 길게 들어왔다. 1209호에서 1208호까지 몇 걸음, 1207호까지 또 몇 걸음. 나는 이 길을 3주 동안 슬리퍼 소리 죽여 가며 다녔다. 나란히 걷기는 처음이었다.

그가 자기 집 앞에 서서 말했다.

"잘 먹었습니다. 그럼."

"저기요."

나는 내 입을 원망했다. 하지만 이미 나갔다.

"손가락이 안 닿는다면서요."

그는 접시를 오른손으로 옮기고 왼손을 들어 보였다. 손가락을 쫙 폈다. 복도 벽에 그림자가 부채처럼 펼쳐졌다.

"네. 안 닿아요."

"공연에서는 잘만 닿던데요."

말하고 나서 아차 했다.

복도가 조용했다. 어디선가 텔레비전 소리가 났다. 건우 씨의 얼굴에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웃음이 번졌다. 이긴 사람의 웃음이었는데 이상하게 놀리는 것 같지가 않았다. 반가운 사람을 만난 얼굴이었다.

"오셨어요? 어디 계셨어요. 구석이 너무 어두워서."

"...몰랐다는 듯이 말하지 마요."

"네."

"왜 틀려요?"

이제 와서 뭘 숨기나. 나는 접시를 든 채 그 사람을 올려다봤다.

"3년을 안 틀렸다면서요. 근데 왜 내 옆집에서만 틀려요. 그날은 왜 나 보면서 틀렸어요."

"유라 누나가 말이 많네."

그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웃음이 눈에서 먼저 빠져나갔다. 접시 위의 전을 내려다보다가, 복도 끝 창을 보다가, 다시 나를 봤다. 잠깐 뭔가 말하려는 것 같았다. 입이 조금 열렸다가 닫혔다.

"그건 아직 말 못 해요."

"왜요?"

"곡이 안 끝났거든요. 그 마디 제대로 치면, 그날 말할게요."

"일부러 틀리는 거잖아요."

"네."

"그럼 지금 제대로 치면 되잖아요."

"그러니까요." 그가 열쇠를 돌리며 어깨 너머로 말했다. "언제 칠지 제가 정할 수 있는 거죠."

어이가 없었다. 어이가 없는데, 미운 마음이 안 들어서 더 어이가 없었다.

문이 반쯤 열렸을 때 그가 돌아봤다.

"대본은 잘 돼 가요?"

"제가 대본 외우는 건 어떻게 알아요?"

"드라마 하시잖아요."

그는 고개를 까딱하고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그럼 또 문으로 뵐게요."

문 너머에서 그 말만 들렸다. 벽이 얇으니까, 아주 잘 들렸다.

저녁에 곽 형한테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로 뭔가 씹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야, 대박. 철거예정 있잖아, 그날 그 밴드. 감독님이 OST 후보로 찍었대. 다음 주 화요일 미팅이야. 너도 와서 인사해."

"제가 거길 왜 가요."

"네 신에 들어가는 곡이라잖아. 8부 증언 신 끝나고 나오는 곡. 거기 기타 도건우 있지, 사람 좋대. 너랑 나이도 같아. 친해져 봐."

"형."

"왜."

걔가 옆집이에요. 그 포스트잇이 걔예요. 사채 아니고요. 나는 그 말을 입안에서 굴리다가 삼켰다.

"아니에요."

"뭐야, 싱겁게. 화요일이다. 머리 좀 자르지 말고 그대로 와. 그 머리가 낫더라."

전화를 끊고 대본을 폈다. 처음 뵙겠습니다를 또 해야 한다. 이번엔 회의실에서, 감독 앞에서. 나는 그 생각을 옆으로 밀어 놓고 방바닥에 앉았다. 탁미경 선배 말을 떠올렸다. 문 앞까지 가 보고 와. 오늘은 복도에 서서 대사를 해 볼까 하다가 여사님이 떠올라서 관뒀다.

그날은 곡이 안 들렸다. 열한 시 사십 분이 지나도, 열두 시가 넘어도, 벽 너머는 조용했다. 나는 혼자 시작했다.

"34쪽 넷째 줄, 다시. 문 앞까지 갔어. 근데, 못..."

"다시. 넷째 줄."

"다시. 넷째 줄."

세 번째에 입에서 욕이 나왔다. 대본을 벽 쪽으로 던졌다. 종이 뭉치가 벽을 치고 툭 떨어졌다. 나는 벽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서 혼잣말을 했다.

"왜 안 되냐, 진짜. 바꾸라고 해. 바꾸면 되지.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한참 그러고 있었다. 벽 너머는 끝까지 조용했다.

옆집 기타리스트가 매일 같은 마디에서 틀린다 3화 사진 5

다음 날 아침 여섯 시 반.

운동화 끈을 묶고 문을 열었다. 곽 형 밴이 내려와 있을 시간이었다. 문을 닫으려는데 노란 게 눈에 들어왔다. 새 쪽지였다. 어제 내가 집에 있는 동안 붙은 거였다. 소리도 없이.

나는 별생각 없이 그걸 뗐다.

"'근데' 앞에서 숨 쉬지 마세요. 어젯밤 세 번 다 거기서 쉬었어요. 34쪽 넷째 줄 맞죠?"

손에 힘이 빠졌다.

한 번 더 읽었다. 글씨 끝이 말려 올라가 있었다. 34쪽 넷째 줄. 어젯밤. 세 번.

휴대폰이 울렸다. 곽 형이었다. 받지 못했다. 복도 끝 창이 희끄무레하게 밝아 오고 있었고, 나는 문 앞에 서서 머릿속으로 지난 3주를 거꾸로 돌렸다.

"오늘 밤은 안 칩니다. 푹 외우세요."

금요일 아침의 그 쪽지. 나는 그 사람한테 뭘 외운다고 말한 적이 없다. 어제 복도에서도 그랬다. 대본은 잘 돼 가요, 하고 물었다.

3주가 아니었다. 그 사람은 봄에 이사 왔다.

봄부터 지금까지 내가 저 벽에 대고 한 소리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대사 말고도. 스물일곱 번 틀린 애 영상에 달린 댓글을 소리 내어 읽어 본 밤. 곽 형 전화를 끊고 아무 말도 안 하다가 혼자 "죄송합니다"를 연습하던 새벽. 어제의 그 욕. 소리 죽인다고 죽였지만 소리가 안 죽던 어떤 밤들.

그리고 그 곡.

끝날 듯, 끝날 듯 올라가서 틀리고, 멈추고.

잠깐 조용하다가, 처음부터 다시.

나는 그 잠깐을 반년 동안 들었다. 그게 쉬는 시간인 줄 알았다. 손을 푸는 시간, 악보를 넘기는 시간. 한 번도 다른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조용한 동안 저 사람이 뭘 하고 있었는지를.

휴대폰이 또 울렸다. 나는 쪽지를 쥔 채로 1208호 문을 봤다. 문은 아무 말도 없었다. 내 등 뒤로 내 집 문이, 그 위의 노란 종이들이 있었다.

나는 이 벽이 얇다고 반년을 욕했다.

벽은 양쪽으로 얇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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