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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찌개에 별 네 개만 주는 시청자의 정체

1화
내 찌개에 별 네 개만 주는 시청자의 정체 1화 사진 1

스태프가 다 빠져나간 스튜디오에서 혼자 식은 찌개를 떠먹는 건 별로 멋있는 일이 아니다. 나도 안다.

그런데도 목요일마다 나는 여기 서 있다. 오른손에 숟가락, 왼손에 휴대폰. 앞치마도 못 풀고 인상은 잔뜩 구긴 채로.

요리 예능 〈맞불 부엌〉. 조리대 두 개를 마주 세워 놓고 출연자 둘이 매주 한 판씩 붙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왼쪽 조리대의 류민혁, 주제가 뭐든 결국 찌개로 끝내는 예능인이다. 어머니가 연못골 시장에서 찌개집을 하시니 밑천이 그것뿐이기도 하고.

방송이 나가면 시청자 게시판에 별점이 달린다. 시청자는 먹어 볼 수가 없으니 사실상 얼굴 점수다. "앞치마가 잘 어울려요, 별 다섯." 대개 이런 식이다.

그런데 석 달째 내 찌개에 별 네 개만 주는 사람이 있다.

닉네임은 '맞은편'.

오늘도 있었다. 별 네 개, 그리고 딱 한 줄.

"소금 조금만 줄이세요."

국물을 한 숟갈 더 떠서 혀에 굴렸다. 아, 짜네. 그게 제일 열받았다.

"이 사람, 저 싫어하는 걸까요 좋아하는 걸까요?"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물었더니 매니저 구태오 형은 김밥을 씹다 말고 눈을 끔뻑였다.

"싫어하면 석 달씩 안 쓰지. 나는 내 전 여자 친구한테도 그렇게 꾸준한 적 없어."

옆에서 대본 뭉치를 안고 가던 막내 작가 오세라 씨가 끼어들었다.

"좋아하면 다섯 개를 주죠. 네 개는 뭐예요, 네 개는. 사람 약 올리는 숫자잖아요."

"그렇죠? 제 말이요."

"근데 민혁 씨, 그걸 왜 매주 찾아 읽어요?"

대답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어서였다.

처음엔 건방져서 무시하려 했다. 화면으로 짠맛이 보입니까, 선생님. 그런데 어느 날 밤 집에서 맞은편이 시킨 대로 소금을 반 숟갈 덜고 끓여 봤다. 다음 녹화 때 그대로 냈더니 심사위원 봉금자 선생님이 국물을 뜨다 말고 나를 쳐다봤다. 식당 경력 사십 년, 칭찬이라고는 "못 먹을 건 아니네"가 전부인 분이다.

"너, 오늘은 누구한테 혼나고 왔니?"

그날 내 점수는 첫 회 이후 최고였다. 그다음 주엔 "무를 먼저 볶으세요", 그다음은 "두부는 맨 나중에". 몰래 고쳐 볼 때마다 맛이 정말 좋아졌다.

그게 더 화가 났다.

내 찌개에 별 네 개만 주는 시청자의 정체 1화 사진 3

맞은편 조리대의 강이현은 배우다.

영화 〈겨울 채집〉으로 신인상을 받았고, 칼 쥔 손만 봐도 제작진이 구급상자 위치를 확인하는 사람이다. 지난주엔 마늘을 껍질째 냄비에 넣어 놓고 카메라를 보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이렇게 해야 향이 도망을 안 가요."

"향 말고 손님이 도망가겠는데요."

내가 받아치면 그가 눈꼬리를 슬쩍 접고 웃는다. 그 순간 분당 시청률 그래프가 튀어 오른다. 요리는 나보다 못 하는데 시청률은 그쪽이 더 좋다. 카메라 앞에서 우리는 말 한마디 안 지는 사이고, 카메라가 꺼지면 인사도 고개만 까딱하는 사이다.

오늘도 그랬다. 녹화가 끝나고 대기실로 빠지는 복도, 벽등이 줄지어 켜진 그 길에서 나는 팔짱을 끼고 천천히 걷고 있었다. 패배 원인을 분석하는 중이었다. 강이현이 뒤에서 오더니 나를 앞질러 갔다. 흰 조리복 소매를 걷은 팔을 가볍게 흔들면서.

그러다 고개만 살짝 돌렸다.

"요즘 찌개 좋아졌던데요."

그러고는 대답도 안 듣고 가 버렸다. 입꼬리에 웃음을 걸어 둔 채로.

좋아졌던데요? 뭐가 잘났다고 평가를 해. 그렇게 세 걸음쯤 씩씩거리다가 발이 멈췄다.

잠깐.

찌개는 심사위원만 맛본다. 출연자끼리는 서로 음식에 손도 못 대는 게 〈맞불 부엌〉의 규칙이다.

저 사람이 어떻게 알아?

그날 밤 나는 게시판을 처음부터 다시 훑었다. 전에는 내용만 읽느라 보지 않았던 곳에 눈이 갔다. 글이 올라온 시각이었다.

전부 목요일 밤이었다. 열한 시 언저리.

방송은 화요일에 나간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시청자들이 찌개 구경도 하기 전에, 녹화한 그날 밤에 별을 매긴 셈이다.

등 뒤로 뭐가 쓱 지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 날부터 나는 제작진 사무실을 어슬렁거렸다. 구태오 형은 "너 왜 안 하던 커피 심부름을 하냐"며 의심했고, 나는 얼음 잔뜩 넣은 커피를 돌리며 슬쩍슬쩍 캐물었다.

"제 찌개요, 녹화 끝나면 남은 건 어떻게 해요?"

조연출은 스태프들이 먹는 줄 알았다고 했다. 조명 팀은 먹어 본 적 없다고 했다. 음향 감독님은 한 번쯤 먹어 보고 싶었다고 서운해했다. 녹화 때마다 내 찌개가 사라지는데 먹은 사람은 없었다.

답은 편집실 앞에서 나왔다. 오세라 씨가 믹스 커피를 타다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아, 그거요? 변 FD가 통에 담아 가던데."

나는 곧장 막내 FD 변준을 찾아갔다. 복사기 앞에서 붙잡힌 그는 아이스커피를 두 손으로 받더니 사색이 됐다.

"그게, 말하지 말라고 하셔서요."

"누가요? 그 찌개 어디로 가는데요?"

"강이현 씨 대기실로 가던데요? 아니, 제가 가져가요. 매주요."

"매주요."

"석 달 됐나. 그, 제가 말했다고는 하지 말아 주세요. 커피 잘 마실게요."

내 찌개에 별 네 개만 주는 시청자의 정체 1화 사진 5

목요일이 왔다.

그날 나는 찌개를 제일 공들여 끓였고, 대결에선 졌다. 강이현이 태운 달걀말이로 봉금자 선생님을 웃겨 버렸기 때문이다. 녹화가 끝나자마자 나는 조리대로 달려갔다. 변준이 뚜껑 달린 통에 찌개를 옮겨 담고 있었다.

"그거 주세요. 오늘은 제가 갑니다."

"민혁 씨, 저기, 그러면 저는."

"커피 맛있었죠?"

그는 조용히 통을 건넸다.

앞치마도 안 풀고 복도를 걸었다. 찌개는 아직 뜨거워서 손바닥이 얼얼했다. 무슨 말부터 할지 수십 번 고쳤다. 당신이 맞은편이냐고. 남의 찌개를 석 달이나 훔쳐 먹으니 맛있더냐고. 하필이면 왜 네 개냐고.

대기실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느긋한 발소리가 났다.

"왔어요? 오늘은 왜 이렇게 늦어요, 변 씨. 나 숟가락 들고 기다렸..."

문이 열렸다.

거울 전구들이 그의 등 뒤에서 환하게 빛났다. 조리복 차림에 앞치마를 그대로 두른 강이현이 문손잡이를 잡은 채 서 있었다. 다른 손엔 정말로 숟가락이 들려 있었다.

나는 통을 들어 올렸다. 그가 나를 봤다. 통을 봤다. 다시 나를 봤다.

언제나 눈꼬리에 걸려 있던 웃음이 그 얼굴에 없었다. 석 달 만에 처음 보는 맨얼굴이었다.

우리는 찌개를 사이에 두고 한참 서 있었다.

얼마나 한참이었느냐면, 통에서 올라오던 김이 눈에 띄게 줄어들 만큼이었다. 그사이 그의 숟가락이 슬그머니 등 뒤로 넘어갔다. 이미 다 봤는데 그걸 왜 숨겨.

복도 끝에서 구두 소리가 나더니 분장 팀장님이 지나가다 우리를 보고 멈췄다.

"어머, 두 분 친하셨어요?"

"아니요."

"아니요."

정확히 동시에 나왔다. 분장 팀장님은 "그래요?" 하고 어딘가 흐뭇한 얼굴로 가 버렸다.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강이현이 먼저 움직였다. 숨을 짧게 뱉더니, 평소의 그 뻔뻔한 목소리를 어디선가 간신히 찾아 입었다.

"식겠네요. 들어와서 말하죠."

그가 문을 더 열었고, 그제야 그의 어깨 너머로 대기실 안쪽이 보였다.

화장대 한쪽에 뚜껑 달린 통이 줄지어 있었다. 깨끗이 씻어 물기까지 말린 통. 내 찌개가 담겨 나갔던 바로 그 통이었다. 세어 보니 열두 개. 첫 녹화부터 지난주까지, 빠짐없이.

그리고 통들 옆에 작은 수첩이 펼쳐져 있었다.

맞은편 조리대에서 석 달을 나와 싸운 사람의 물건치고는 지나치게 정돈된 풍경이었다. 멀리서도 보였다. 펼친 쪽 맨 위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 그린 별 네 개가.

아니, 맨 위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아래, 그 아래, 또 그 아래까지 빼곡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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